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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의 연구일지
나이롱 환자 이야기 - 맹장 수술(충수돌기 절제술) 2편(수술 후 입원편) 본문
배신감이 들었다.
TV에서는 수술 전에 '마취 들어갑니다~' 라며 안내해주던데 그런 것도 없이 그냥 훅 가버렸다가 2시간이 지나버린 것이다.
나중에 퇴원하고 들은바로는 원래 마취 전에 뭘 물고 마스크 같은걸 쓴다는데 아마 내가 그런 행동을 했지만 전신마취 때문에 그 부분은 기억이 없었을 수도 있다는 전신 마취 경험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입원 1일차
그렇게 깨어난 나는 몽롱하고 졸린 상황에서도 혼자 회복실에서 다른 침상으로 직접 이동해 누워 어디론가 실려갔다. 병실에 들어와서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5시였다. 안 그래도 마취 때문에 졸린데 12시까지 잠도 못 자게 계속 깨웠다. 마취에 깨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몽롱한 느낌, 졸린 느낌, 힘을 줄 때마다 아파 죽을 거 같은 배, 불편한 침상, 고열 등 여러 느낌을 가지고 밤이 지나갔다.
입원 2일 차
푹 잔 느낌보다는 중간중간 깨서 불편한 몸을 뒤척거렸다. 평소처럼 왼쪽으로 누워 자는 자세가 안 나와서 불편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제 아침 7시부터 물을 한 모금도 못 마셔서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침 6시부터는 밥은 말고 물은 먹어도 된다고 간호사 선생님이 말하셔서 물을 마시니 살 거 같았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고통의 시작이었다.
1. 복강경 수술
처음 들어보는 방법이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수술하신 분들은 다 알고 있는 유명한 수술 방법이다. 배에 구멍을 3개 정도 뚫어서 하나는 카메라, 2개는 수술 도구를 집어넣어하는 수술법이다. 근데 이게 나는 맹장 수술이다 보니, 배에 5~10mm 정도의 구멍을 뚫는 위치가 코어 근육 부분이다. 간단히 말해 누웠다가 일어나면 힘이 들어가는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수술 후 코어 근육에 힘이 돌아오고 고통이 없어질 때까지 2주 정도는 걸렸다. 그동안은 누웠다 일어나는 게 세상 힘든 일이다.
2. 마약성 진통제
수술 전 마약성 진통제를 의사들이 권한다. 아무래도 수술 후 통증이 심해서 그런 것 같다. 너무 고통스러울 때 빨간 버튼을 누르면 쭉 내려오는 데 사용하지 않아도 조금씩은 들어오게 해 두었다. 나는 한 번도 누른 적이 없지만 60ml 정도 되는 마약성 진통제가 3일 정도면 10ml 정도 들어온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 수술 후 고통이 크지는 않다. 하지만 누웠다 일어날 때, 음식물이 들어올 때 장의 고통은 조금씩 들어오는 진통제로는 극복이 안된다.
3. 소변량 체크
들어보니 수술을 하면 몸에 수분 손실이 매우 크다고 한다. 그래서 수술 이후 소변량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는 들어간 수액의 양에 비해 소변량이 너무 적어서 문제였다. 대략 배꼽과 중요 부위 정 가운데 지점에 구멍이 나있어서 안 그래도 소변을 볼 때마다 고통스러운데 소변량이 적고 진해서 소변볼 때마다 고통스럽다.
중요한 건 나의 소변량을 매번 체크해야 하는 것인데, 소변을 볼 때마다 양을 체크해서 내가 기록해야 한다. 이게 또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소변 통에 소변을 보고 양을 체크한 다음에 소변을 변기에 버리고 소변통을 다시 씻어야 한다. 수액, 마약성 진통제를 주렁주렁 달고, 아픈 코어를 붙잡고 폴대를 끌고 다니면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마약성 진통제가 소변량 감소에 한몫을 했는데, 이 진통제가 소변을 잘 안 나오게 한다고 간호사님들도, 의사님들도 입을 모아 이야기를 하셨다. 결국 나중에는 진통제를 빼버렸다.
나중에 들어간 수액에 비해 소변량이 너무 적으니까 잘못하면 소변 줄을 넣어야 할 수 있다고 하는 간호사님의 반협박? 에 나의 인간적 존엄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물을 마시면서 소변을 체크했다. 입원 3일 차 이후부터는 체크하지 않아도 되었다. 후우....
4. 음식물 섭취
다행스럽게도 입원 2일 차 점심부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일반식은 아니고 연식(죽)만 먹었다. 근데 수술 이후 얼마 안돼서 3분의 1 정도만 먹을 수 있었다. 사실은 그것도 억지로 먹은 것이다.
나름 대학교 생물학도로서 장의 운동에 대해 대략은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 온몸으로 겪어보니 정말 고통스러웠다. 입에 음식물이 닿고 넘기는 순간부터 장이 미친 듯이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다시 말해 음식을 삼키면 장이 움직이면서 수술부위가 흔들흔들하는 것이다. 이게 또 만만치 않은 고통이다. 음식 먹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진짜 살기 위해 먹는 것이다. 죽만 먹는 것도 이리 힘든 일이다.
5. 수술 후 발열
수술 이후 발열이 유독 심했다. 퇴원하기 전날까지 체온이 37도 아래로 측정된 적이 없다. 38도는 기본이고 해열제를 맞아도 체온이 안 내려간다. 그래서 입원 내내 멍하게 지냈다. S가 심심하니까 보라고 준 아이패드를 한번 만져본 게 전부다. 하루 종일 열 때문에 멍하게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외래에서 들은 이야기지만 수술 과정에서 맹장이 약간 터진 상태였다고 한다. 그제야 수술 이후 발열이 납득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을 단 하루 만에 다 겪었고 입원하는 내내 이 고통을 겪었다. 정신없이 입원 2일 차가 지나가고 저녁에 해열제를 맞고 나서 몸이 조금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해열제를 맞고 난 이후 땀이 미친 듯이 나고 소변량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1시간 만에 몸에서 거의 700ml는 빠져나갔다. 몸의 붓기가 그제야 조금은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다시 시작된 지속된 발열로 밤은 길었다. 30분 자다가 깨서 열 때문에 뒤척거리다 지쳐서 잠들기를 반복해도 긴 밤은 지나지 않았다.
6. 항생제와 수액
처음으로 나는 여기서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 것이 바로 이 항생제이다. 아침 먹고 항생제(+주사), 점심 먹고 항생제, 저녁 먹고 항생제를 준다. 나는 여기 있는 한 절대 염증으로 죽지 않을 것이다. 아침을 조금 먹은 상태로 항생제 주사를 맞았더니 잠시 뒤에 빈속 항생제 부작용으로 구역질이 나는 걸 겨우 참았다. 이때부터는 항생제를 맞으려고 죽만 다 먹었다.
사실 밥을 잘 안 먹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으시는데 수액을 색깔 별로 달아주기 때문이다. 투명한 수액을 다 맞으면 초록색도 주고, 노란색도 준다. 병원은 사람을 살리는 공장이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
사실은 밤에 너무 힘들면 스피커폰으로 콜 하라고 간호사님이 말하시고 가셨는데(해열제를 준다고), 본디 예의가 넘치는 유교 보이인 나는 감히 12시 이후에 간호사님을 부르지 못했다. 결국 아침 6시에 체온을 재러 온 간호사님이 체온을 재더니 이렇게 높은데 괜찮았냐고 물어보셨다. 하지만 말주변이 없는 상남자인 나는 매우 힘들었다는 말을 "그냥 좀..."이라는 말로 압축해서 표현해버렸다. 볍신이 따로 없다.
입원 3일 차
이때가 피크였다. 위에 써둔 모든 일들은 디폴트이고, 열이 나는데서 끝나지 않고 이번에는 오한이 찾아왔다. 간호사님들이 내가 열이 너무 오르니 아이스팩을 계속 겨드랑이 끼고 있으라고 했는데, 그래도 효과가 없다. 그냥 체온이 더 오르는 것만 막을 뿐이지 체온이 38 도인 건 매한가지였다.
열이 오르기만 하면 멍한데 오한이 찾아오니 이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너무나도 추운데 체온을 낮춰야 한다고 이불도 못 덮고 아이스팩 3개를 목 뒤 겨드랑이 끼고 있어야 한다. 한 겨울에 맨몸으로 있는 기분이다. 나중에 보니 주사 라인을 잡아 둔 부분이 부어서 수액이 안 들어가고 있었고 오한에 시달리는 와중에 주사 라인을 다시 잡았다. 그렇게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오한에 시 달리고 나서야 겨우 오한이 사그라들었다.
이렇게 힘들어하는데도 해열제도 안주는 간호사님들이 서운했다. 안다. 나중에 이야기하시더라 의사 선생님이 정해준 온도가 있는데 그 온도가 안되니까 투약을 못했다고... 그냥 마음속으로만 그랬다. 결국 오후 4시 정도에 해열제를 맞고 열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물론 체온은 37.5도 이상이었다.
오늘도 밤에 잠이 들지 못할 것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했으나, 내가 예의 있는 유교 보이라는 사실을 간호사님이 인수인계받으셨는지 힘들면 해열제를 준다는 말 대신 그냥 밤 11시쯤에 해열제를 달아주고 가셨다. 이날 밤은 그래도 2시간에 한 번씩만 깨서 나름 푹 잘 수 있었다. 이날 밤새 내 체온을 4번이나 재러 오셨다. 정말 눈물 나게 감사했다. 하지만 유교 보이는 울지 않는다.
입원 4일 차 - 퇴원
아침에 처음으로 내 체온이 36.7도가 나왔다. 그리고 퇴원할지 결정하기 위해 혈액을 뽑아가셨다. 힘든 마음을 위로하려고 아침을 먹고 병원 휴게소 옆 정원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있으니 간호사님이 항생제를 주려고 오셨다. 아니 병실이 아니고 휴게소 옆에서 항생제를 맞을 줄이야. 처음으로 간호사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퇴원할 수 있을 까요?"
"의사 선생님에게 어필 한 번 해보세요~"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시고는 떠나셨다.
떠나기 전 간호사님이 곧 회진이니까 어서 병실로 돌아가라고 하시길래 일어나려 했는데, 항생제가 너무 빨리 들어가서 인지 팔이 너무 아파서 팔을 부여잡고 낑낑 거리는 사이 의사 선생님들이 나를 둘러쌓다. 아니 그 슬기로운 의사생활 마냥 의사 선생님들 5명이 휴게소 옆에 앉아 있는 나를 둘러싸고는 낑낑 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교수로 보이는 훤칠한 의사 선생님이 왜 그러냐고 하길래, 말주변 없는 나는 "그냥.. 아아아아" 하면서 팔을 부여잡고 있으니 상황을 알아채시고는 대충 만져보시더니 원래 항생제가 좀 아프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물어보셨다.
"어떻게 하셨으면 좋겠어요?"
.....ㅎㅎㅎ 병원에서 처음으로 네 문장 이상으로 말을 했다.
퇴원시켜 주시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전 9시. 이 병실을 나와 드디어 퇴원했다.
(간호사님이 외래도 빨리 잡아주시고, 퇴원 약도 빨리 받아주셔서 1시간이나 일찍 퇴원할 수 있었다.)
간호사님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퇴원하려고 했는데 수줍은 유교 보이인 나는 얼타고 있다가 고개만 숙이고는 퇴원했다.
글로나마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46 병동 간호사님들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열흘 뒤 다시 내가 46 병동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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