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늉의 연구일지

나이롱 환자 이야기 - 맹장 수술(충수돌기 절제술) 4편(재입원 2편) 본문

나이롱 환자 이야기

나이롱 환자 이야기 - 맹장 수술(충수돌기 절제술) 4편(재입원 2편)

OrtSol 2022. 10. 8. 07:47

입원을 위해서는 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 당일 입원을 위해 엄청난 PCR 진단 속도를 자랑한다는 병원으로 가서 12시에 검사를 받고 4시~5시 정도면 결과 문자가 갈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스무스한 입원을 생각하고 5시에 당당히 입원을 하러 외래 창구를 향했다. 하지만 결국 문자는 외래가 끝나는 5시 30분까지 오지 않았고 나는 바리바리 싸온 짐을 들고 응급실로 향했다.
(외래 시간 이후에는 응급실에서 병원 업무를 하는 걸로 보인다.)

그리고 입원 결정서를 들고 하염없이 문자를 기다리면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초코우유로 저녁을 때웠다. 드디어 6시 30분 PCR 음성 문자를 받고 응급실에서 입원 수속을 한 뒤, 46병동으로 향했다.

조금 뻘쭘한 기분으로 46병동에 도착하니, 어떤 연유에서인지 내가 입원하는 걸 몰랐던 간호사님들이 내 이름 뭐 왜 입원했는지 이런 것들을 돌아가면서 물으며 취조하셨다. 그 와중에 왜 입원하라고 했냐는 질문에 "그냥 의사 선생님이 입원하라고 하셔서..."라고 말하는 유교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내가 아는 척을 한건 아니지만 일부 간호사님들은 내 이름을 듣고 '아~ 김숭늉님' 이라며 아는 눈치셨다.

뭐 어찌저찌 나의 입원 수속이 끝나고 침상도 배정받고 뭐 이랬다. 전보다는 훨씬 나은 몸으로 입원해서 그랬는지 생각보다는 편히 잠들었다. 긴 하루였다.


0. 나이롱 환자의 마음가짐

사실 나는 어디가 매우 아픈 것은 아니고, 배꼽 주변의 봉합 부위에 염증이 심해서 소독을 받으며 치료를 하고자 입원한 경우라 다른 환자들에 비해서는 나일론이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자 나이롱환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나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1. 병원 생활 필수품 - 수저

지난 입원에서 당황한게 있다면 바로 '수저'이다. 밥을 먹으려고 보니 수저(여기서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말한다)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알고 보니 입원을 할 때 수저는 개인용품으로 챙겨 와야 한다. 그래서 지난 입원때 처음 죽을 먹을 때 죽을 들고 마셨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다고 죽은 흘러내리지 않는다. 결국 강아지 마냥 혀로 몇 번 핥아먹다가 몸도 안 좋은데 숟가락도 없어 죽을 못 퍼먹는 게 서럽고 현타가 와서 내려놓았다. 그날 물건을 건네주러 온 S가 편의점에서 수저세트를 하나 사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게 생각보다 비싸다(4800원이었던가...)

 

2. 병원 밥

병실에서는 하루 세끼가 전부 나온다. 혼자 사는 자취남에게 하루 세끼가 나온다는 건 사치와 다름없다. 지난 입원 때는 죽만 먹어서 잘 몰랐는데, 연식(죽)이 아닌 일반식은 매 끼니마다 기존식과 선택식으로 선택이 가능하다. 마치 대학생 시절 학생 식당의 백반과 특식의 차이 정도로 볼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가격은 동일하다.

신조 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혀가 둔감하여 기본적으로 나가서 먹는 것은 다 맛있다. 그리하여 감히 맛을 평가하는 것이 조금은 우려되지만 여기 병원밥은 상당히 괜찮다. 나는 호기심이 많아 퇴원 전까지 2끼를 제외하고는 전부 선택식으로 먹었다. 선택식은 뭐랄까 나 같은 나이롱환자를 위한 식단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채롭고 맛도 제법 괜찮다.

입원 1일 차
점심
카레(메인 메뉴) - 무슨 국 대접에 카레가 잔뜩 들어 있다. 안에 들어 있는 고기는 닭고기이다. 맛은 정말 카레다. 하지만 급식용 카레보다는 맛이 괜찮다. 국은 역시 병원이라 그런지 간이 막 세지는 않지만 먹을만했다. 점심에는 늘 요구르트를 하나 준다.

저녁
새우 볶음밥(메인 메뉴) - 여기서 중식을 먹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새우 볶음밥 메뉴도 제법 괜찮고, 같이 비벼먹을 짜장 소스도 준다. 그리고 후식으로는 캔 황도가 나왔다. 나름 완벽한 식단이다. 여기는 저녁에는 늘 과일 종류가 하나 나온다.

왼쪽(점심), 오른쪽(저녁)

보면 알겠지만 식단 선택권이 같이 와서 다음 식단을 선택할 수 있다. 다 먹고서는 병실 밖에 있는 배식차에 식판을 반납하면 되는데 그때 식단 선택권에 체크를 해서 같이 넣어두면 된다.


입원 2일 차
아침
크로와상(메인 메뉴) - 외국식으로다가 아침 식사를 먹었다. 전날 저녁에 크로와상 아침식사로 나온다길래 2~3개 생각했는데 크로와상이 5개였다. 무려 5개. 잼 뿌려먹고, 수프에 찍어먹고, 반으로 갈라서 샐러드에 넣어먹고 다해보며 씹고 뜯었다.

점심
함박 스테이크(메인 메뉴) - 내가 쓰는 병실(5인실)의 나머지 세분이 다들 식사를 별로 못하시는데 혼자서 스테이크 썰어서 밥에 야무지게 얹어서 먹으니 진심으로 나이롱환자가 된 기분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고기는 옳다. 사진은 못 찍었다 ㅠ

저녁
치즈 볶음김치... 밥?(메인 메뉴) - 치즈가 올라간 볶음김치가 메인 메뉴이다. 야무지게 밥까지 비벼서 얼갈이 된장국에 먹었다. 하루 세끼가 제법 조합이 좋아 포식하였다. 내일 아침은 당연히 단호박죽이다.

왼쪽(아침), 오른쪽(저녁)


입원 3일 차
아침
단호박죽(메인 메뉴) - 전날 노트북으로 게임하다가 늦게 자서 아침에 식사를 가져다주시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죽만 먹었다. 본죽과 같은 전문적인 죽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꾸덕한 게 먹을만하다.

점심
돈육 김치찌개(메인 메뉴) - 김치찌개는 실패할 수 없는 메뉴이긴 하나 아주 실하다. 고기와 두부도 많이 들어있어서 한 그릇 뚝딱 먹었다. 밑반찬도 궁합이 좋아서 요플레 바닥까지 싹싹 긁어 빈 그릇으로 반납했다.

저녁
일반식 - 잡채와 순두부찌개가 더 나아 보여 이걸로 택했다. 식단을 보면 알겠지만 밀가루가 거의 없는 식단이다. 그렇다 건강식으로 볼 수 있다. 저녁 과일로는 포도가 나왔는데 저렇게 봉투에 따로 담아주어 위생적인 느낌을 받았다.

왼쪽(아침), 중간(점심), 오른쪽(저녁)



입원 4일 차

아침

새우 야채죽(메인 메뉴) - 평소 아침은 많이 먹지 않지만 죽의 양도 제법 괜찮고 새우도 데코레이션이 아니라 그래도 10마리 이상은 들어 있는 실한 죽이다. 거기에 유부 국도 제법 괜찮아 죽이랑 유부 국은 바닥까지 긁어먹었다.

 

점심

찰밥과 냉면(메인 메뉴) - 여기서 냉면이라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면이랑 육수도 기본이 잡혀있고 거기에 비싼 배와 고기도 제법 들어 있다. 다 먹고 찰밥과 냉면 김치랑 브로콜리로 밥도 챙겨 먹었다. 

 

저녁

돈육 불고기 쌈(메인 메뉴) - 입원했을 때 먹었던 메뉴 중 단연 최고의 메뉴이다. 맛도 있고 무엇보다 실패할 수 없는 그런 맛이다. 사진을 보면 알지만 그냥 쌈장도 아니고 야채들이 버무려져 있어 맛이 더 살아난다. 병실에서 쌈을 싸 먹고 있으니 진짜 나이롱환자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왼쪽(아침), 중간(점심), 오른쪽(저녁)

 

입원 5일 차

아침

모닝빵(메인 메뉴) - 크로와상과 마찬가지로 빵이 5개다. 이번엔 우유까지 줘서 아주 즐겁게 먹었다. 수프도 옥수수 수프여서 미군 아침 식사 느낌으로다가 아주 잘 먹었다. 자취남은 무엇이든 잘 먹는다.

 

점심

치킨 스테이크(메인 메뉴) - 스테이크여서 기대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역시 튀김이 거의 없는 병원 밥의 한계로 보인다. 하지만 나이롱환자는 그것 마저도 싹싹 긁어먹었다.

 

저녁

전주식 비빔밥(메인 메뉴) - 과연 전주식 비빔밥이란 무엇인가. 나물과 반찬 계란 프라이까지 야무지게 올라와 있고 묵도 있으며 고기와 같이 볶은 볶음 고추장에 김자반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비빔밥이었다. 사실 이런 걸 혼자 맛있게 먹을 때면 병실의 다른 환자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생긴다.

왼쪽(아침), 중간(점심), 오른쪽(저녁)

입원 6일 차

아침

김치 바지락죽(메인 메뉴) - 바지락이 제법 씹히는 바지락 죽이다. 약간의 매운맛을 반찬들이 중화시켜주어 아침부터 괜찮은 죽을 먹은 기분이다. 생각보다 바지락의 양이 많아서 놀랬다. 이 정도면 본죽과 거의 비슷하게 올라온 맛이다.

 

점심

웰빙 쫄면(메인 메뉴) - 이날 S에게 점심에 반찬으로 쫄면 인척 하는 해초 쫄면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쫄면이라길래 기대하며 신청하긴 했으나 아무래도 웰빙이라는 말이 거슬렸다. 그 초록면이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있었으나 그런 일은 없다. 그냥 쫄면이다. 단지 조금 더 부드럽고 쫄깃함이 덜한 쫄면이었다. 그래도 역시 채소가 야무지게 올라와 있다. 또한 병원밥에서는 보기 힘든 '튀김'이 올라와 있다. 일식집의 새우튀김에 비할바는 아니나 반찬으로 먹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새우튀김이었다.

 

저녁

오므라이스(메인 메뉴) - 볶음밥에 야채가 매우 잘게 갈려 있어 소화를 잘 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므라이스의 기본인 얇은 지단과 케첩까지 제대로 뿌려서 줬기에 아주 잘 먹었다. 그리고 반찬으로 나온 깻잎과 김치와의 조합도 나쁘지 않다.

왼쪽(아침), 중간(점심), 오른쪽(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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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7일 차(퇴원 날)

아침

엄마표 닭죽(메인 메뉴) - 퇴원 전 마지막 식사였다. 그냥 닭죽도 아니고 왜 엄마표 닭죽 이것이 가. 엄마는 저런 깻가루를 뿌려주지 않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네이밍에 대한 생각이지 맛은 괜찮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백숙 먹고 남은 국물에 끓인 닭죽보다 기름진 것이 덜 한 느낌이었다.

 

2. 치료 과정

입원 후 3일 정도는 매일 2번씩 염증 부위를 소독하면서 경과를 지켜보았다. 그동안은 인턴으로 보이는 의사 선생님들이 소독을 해주셨다. 그런데 소울님과 다르게 아주 부드럽게 내가 아플까 걱정하시면서 해주시는 것이.... 좋긴 했는데 뭔가 아쉬웠다. 절대 나는 그런 취향은 아니지만 뭐랄까... 소독을 덜한 느낌이랄까 그랬으나 뭐 의사 선생님들 말을 잘 들어야 금방 낫지 않겠는가.

입원 4일 차에 소울님이 오셔서 상처부위를 포셉으로 들어보고 내부를 강하게 닦아내시면서 상태를 보더니 염증을 빨아들이는 기계 같은 것을 달자고 하셨다. 그 기계라는 것을 달아야 하는 것에 두려움이 생겼으나 막상 달아보니 별거 아니었다. 배꼽 부위 주변에 엄청 큰 거즈를 붙이고 그 위에 그보다 큰 방수밴드를 붙였다. 그리고 손바닥 반 정도 되는 작은 기계를 연결했는데, 그게 거즈 부위의 공기를 주기적으로 빨아들이며 배에 딱 붙을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염증 부위에서 나온 피와 진물을 쑥쑥 흡수한다. 한 동안 이 기계를 입원복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그동안은 소독을 하지 않는다. 

그 동안 항생제도 맞았는데 어쩔 수 없이 항생제를 맞기 위해 팔에 주사 라인(찾아보니 Ⅳ라인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을 잡았는데, 이게 생각보다 거슬리고 귀찮다. 입원한 7일 동안 아침 식사 후에만 항생제를 맞는다. 항생제를 다 맞으면 빼주기는 하는데 라인을 그대로 팔에 잡힌 상태로 있어서 팔을 잘 못쓰면 자꾸 바늘에 찔려서 따끔하다.

 

기계를 3일 정도 착용한 후 입원 7일 차 아침 드디어 상처 부위를 봉합하고 퇴원하였다.

 

3. 퇴원 후 치료 과정

뭐 이래저래 봉합을 하고 퇴원하였는데, 마침 연휴가 시작이라 병원에서 소독이 어려워 퇴원하는 길에 멸균 거즈, 빨간약(포비돈), 방수밴드(3M 테가덤)를 사서 자가 소독을 하였다. 두 번 다시 염증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집념으로 유튜브에 올라온 의사 선생님들이 말하는 소독 방법(무슨 빨간약 소독 효과 5배 라던지, 자가 소독법 이라던지)을 참고해 하루에 두 번씩 소독하였다. 퇴원하기 전 인턴 의사 선생님이 소독약을 바른다는 느낌보다는 염증을 닦아낸다는 느낌으로 하라고 하여 비누로 박박 닦아낸 눈썹 집게를 준비해 빨간약을 바르고 30초 뒤에 멸균 거즈로 닦아내는 걸 2번 한 다음, 마지막으로 빨간약을 바르고 말린 뒤 멸균 거즈를 덮고 방수밴드를 붙였다. 

연휴 이후 의사 선생님 말대로 대장 항문외과에서 매일 소독을 받다가 약속된 외래 날짜에 가니 소울님이 아직 살이 덜 붙었다며 3일 정도 후에 풀자며 말하셨고, 3일 동안의 소독 이후 결국 봉합을 풀게 되었다. 다행히도 염증은 없었고 별도의 소독 없이 3일 정도 방수밴드를 붙이고 있다 떼어버렸다. 봉합을 제거하는 날도 소울님 여전히 소울 리스하게 혹여 아프면 외래 잡고 오라는 말을 하셨다. 나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말을 하고는 돌아갔다.

 

한 달 간의 치료가 드디어 끝났다.